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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긴애니자료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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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gweirxcvni33374 작성일19-01-30 조회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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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몇 해 동안 동해의 월포리란 포구에 자주 나다닌 적이 있다. 그곳 정치망 그물을 걷어 올리는 뱃사람들을 따라 새벽바다에 나가면 육지에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신나는 경험을 할 수가 있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고등어를 나뭇잎 크기로 포를 뜨고 밥 한 술에 날된장과 통 마늘 한 개를 얹어 먹으면 정말 기막힌 고등어 쌈밥이 된다. 어머니의 얼굴에도 이끼가 앉았다. 사람들은 이끼 같은 검버섯을 저승꽃이라고 부른다. 저승꽃이라 부를 때 검버섯은 삶의 외곽으로 밀려난 느낌을 준다. 저승꽃이란 말 속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정경들이 사라진 우울한 냄새가 배여 있다. 그것은 자꾸만 허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저승꽃을 돌탑에 앉은 이끼 같은 것이라고 주문을 걸어 본다. 이끼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시간의 퇴적위에 움 터는 생동이기 때문이다. 스무 살 무렵 하늘색 우산을 쓰고 어느 집 앞을 지나가던 때도 가슴은 뛰는데 걸음은 느려졌다. 담장 너머로 채 벙글지 않은 목련꽃이 기웃거려 꽃에 눈을 두었던가. 꽃송이 사이로 보이는 창 언저리를 엿보았던가. 노랗게 떨어진 감꽃을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하는 척 걸음을 늦췄던가. 웅장미를 자랑하는 로마 시대의 고적도 아니요, 겨레의 피가 통하는 백제, 고구려나 서라벌의 유적도 아닌, 보잘 것 없는 한 칸 초옥이 헐리운 빈 터전이 이렇게도 내 마음을 아프게 울리어 주는 것은 비단 비 내리는 가을밤의 감상만은 아닌 것이다. 프로선수의 세계에 스토브 리그하는 말이 있다. 한 해 동안의 결실을 난로 곁에서 평가한다는 말인데 이를 테면 새해의 연봉을 결정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한 해 동안 흘린 땀과 연봉은 비례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때이지만 선수들에겐 가장 잔혹한 시기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생명 있는 어느 것인들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땀이 없을까. 그러고 보면 휴식기라 할 수 있는 겨울만큼 자신의 근력을 키우기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 싶다. 풀꽃이 겨울 한 철 근력을 키워 다시 태어나듯 체리 묘목에게도 지난겨울이 강한 근력을 키운 시간들이 됐으면 좋겠다. 지난겨울 동안 키운 내공으로 풀꽃이 얼마만큼의 기세를 뻗어나갈지 올여름의 성장이 자못 궁금하다. 며칠 전 아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달빛은 감성感性 밝기를, 그 명암의 농도를 조종하는 장치를 갖고 있는 듯했다. 16년 쯤 되나 보다. 교단에서 두보杜甫 시詩를 가르칠 때였다. 마침 가을이어서 <추홍秋興> 여덟 시 가운데서 나는 첫 번째의 시를 골랐다. 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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